사람은 숨을 쉬어야 물건을 휘두르거나 만들 수 있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세상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생물이다.
 
나는 일평생 숨을 쉬어 왔다.
 
숨을 쉬며 무언가를 쌓아왔고, 무언가를 성취해 냈다.
무언가를 성취해낼 때도, 후회할 때에도,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일생동안 숨을 쉬면서 살아왔다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기에 내가 더 숨을 쉬지 못하게 된 날, 내 삶은 끝났다.
 
후회 없는 삶이었느냐 묻느냐면, 글세다, 과연 이 세상에 삶을 살며 후회 하나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던 호인이 몇이나 될까.
그래, 적어도 나는 그런 호인의 부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끝난 것은 끝난 것. 내가 원했든 원치 않든, 나는 내 삶을 그리 마쳐야 했다.
 
하지만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새로이 시작하는 법이 세상 이치라 하였던가.
나는 다시 한번 숨을 쉬기 시작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런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내가 원했던가, 원하지 않았던가.
행운인지 불행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걸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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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번째 삶이 어떠했는가.
세월이 꽤 흘러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상당히 적어졌으나, 적어도 자기 자기 단련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였던 기억이 있다.
 
하루 종일 무기를 휘두르는 법을 연마하고, 격하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단련하였다. 그런 단련이 나의 일이었고, 곧 나의 취미였다.
무를 단련해 업을 쌓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낙이었던 전형적인 무인의 삶.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었나 몰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열정이란 말로는 지나치고, 광기라 부르기엔 살짝 모자란 삶이었다.
그런 삶의 마지막에 그런 삶에 적잖은 회의감을 느꼈던 것도 이제 와선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두 번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이전처럼 무를 단련하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먹은 바가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었었던 나는 지금─
 
 
빠아아아아아앙!!
 
─도로 위에서 가로막는 차들을 전부 밀고 지나갈 기세로 속도를 내는 덤프트럭의 짐칸 쪽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려’ 있었다. 덤프트럭 짐칸의 고정줄을 잡은 채 도마뱀 마냥 매달린 채 도로 위를 트럭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끼익! 끼이이익!!!
 
그리고 이 덤프트럭의 운전수는 내가 그렇게 매달린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연신 운전대를 좌우로 꺾으며 나를 떨쳐 내려고만 했다.
이리저리 꺾이는 바람에 몸이 붕 떠서 떨어져 나갈 뻔했지만 다른 손으로 짐칸에서 잡을 만한 곳을 한 군데 더 짚어서 쥐는 것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야!! 저 새끼 아직도 붙어 있잖아!! 더 세게 꺾으라고 더!!”
“이럴게 아니라 그냥 쏴서 떨궈 등신아!!”
 
운전석 쪽에서 한바탕 그런 말싸움이 오고 가는 게 들렸다. 그러고 조수석 쪽에서 누군가 상반신을 내밀어 내 쪽을 보는 게 보였다. 하얀 바탕에 붉은색 가부키 분장을 한 것만 같은 가면을 쓴 남자가 보였다.
 
‘저 가면,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가면보다도 그 남자가 손에 든 채 나를 향해 겨누기 시작한 물건에 더 눈길이 갔다.
총이었다. 그것도 기관단총.
 
“이런.”
타다다다다탕!!
 
난처한 상황이다, 라고 생각이 들자마자 눈앞에서 총의 격발음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지붕 쪽을 잡은 팔에 힘을 줘 몸을 위로 당겨 피해냈다. 아슬아슬하게 총탄이 지나가며 가른 바람에 섞인 화약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빠르게 몸을 더 굴려 덤프트럭의 지붕 쪽에 몸을 눕혀 고정했다. 이 위치라면 덤프트럭 구조상 조수석에서 나를 쏘는 건 힘들겠지.
 
어찌 되었든 잠시 한숨 돌릴 틈이 나왔다. 그렇기에 말하는 거다만은, 나는 지금 내 두 번째 삶을 이렇게 보내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들을 겪는 게 내 일상은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일상과 다른 일에 휘말릴 때도 있는 법.
 
그리고 이런 비일상적 상황이 덮쳐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인생을 유연하게 사는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끼익! 끼이이익!
 
도로위를 달리던 트럭이 다시금 좌우로 급하게 방향을 꺾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순간 트럭에서 떨어져 나갈 뻔했지만 간신히 차체를 잡고 버텨 냈다.
아무래도 내가 지붕에 올라가 쏠 각이 나오질 않자 다시금 차체를 흔들어서 떨궈버리려는 듯한다.
 
‘그렇다고 얌전히 떨어져 주기엔 할 말이 많...지!’
 
차체를 잡은 채 정면에서 느껴지는 바람을 거슬러 가며 운전석 쪽으로 등반하듯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운전석 쪽 지붕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은, 내가 자기들 위쪽으로 이동해 오는걸 눈치챈 조수석의 가면 쓴 남자가 다시 몸을 내밀어 나를 향해 총을 겨누려는 게 보였다.
 
하지만 늦었다. 날 노릴 거였다면 조수석 창문 쪽으로 몸을 내밀게 아니라, 조수석에 앉은 채 운전석을 노렸어야지. 물론 난폭운전 중이니만큼 흔들려서 운전수를 실수로 쏴버릴 수도 있으니 그랬을 테지만.
 
다시 기관단총의 총탄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전, 나는 마치 영화에서 특수 부대가 로프를 타고 하강하며 유리창을 뚫고 브리칭을 하며 들어오듯이─ 강하게 운전석 유리창을 깨부수며, 그대로 운전하고 있던 가면 쓴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
 
콰창! 뻐억!
“쿨럷!”
“우왁! 우와아아아악!!”
두 다리에 걷어차인 운전수는 어찌나 강하게 맞았는지 운전석에서 밀려나 조수석으로 날려가 버릴 정도로 강하게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때문에 조수석에서 상반신을 내밀고 날 쏘려던 가면 쓴 남자는 조수석으로 날아온 운전수에게 밀려나버려 그대로 창밖으로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저런.”
 
운전수를 조수석으로 치워 버리면서 창을 통해 들어와 운전석에 앉아 계기판을 보았다. 계기판의 바늘은 시속 85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래서 초등학교에서 함부로 창밖으로 몸 내밀지 말라고 교육하는건데 말이지.”
 
쯧쯧쯧, 하고 혀를 차며 동정을 표해준 뒤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으로 치워진 운전수는 걷어찰 때의 감각을 되새겨 봤을 때 한동안 기절해 있을 테니, 일단 내가 이 트럭을 세워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선 브레이크를 밟으려는데─ 문제가 또 하나 생겼다.
 
“...브레이크가 어느거지?”
 
내가 운전면허가 없는 건 아니다. 오토바이를 주로 몰긴 하지만 면허 따면서 승용차도 몰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트럭을 몰아본 경험은 없었다. 트럭은 원래 페달이 3개인가?
 
“이건가?”
 
사실 승용차 몰아본 것도 꽤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일단 왼쪽이 브레이크였던 걸로 기억하니 맨 왼쪽의 페달을 강하게 밟아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트럭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도로를 달렸다. 아무래도 내가 밟은 게 브레이크가 아니던지, 혹은 차가 고장 났던지 둘 중 하나인 듯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다음을 생각하기도 전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가드레일이 있는 게 보였다.
아 맞다, 페달이 아니라 창밖을 봤어야 했었구나.
 
“1종 따둘 걸 그랬나.”
 
콰직! 콰아앙!!
 
운전할 때는 무얼 하든 전방 주시가 최우선이다, 내가 운전면허 딸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인데 이제야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바로 나는 옆자리의 기절한 운전수를 잡고서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운전할 때엔 전방 주시. 다시 기억해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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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분 교통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재 시지프스구 테이퍼가 51번 도로에서 덤프트럭이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교통정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해당 노선을 이용하시는 운전자 분들 께서는...]
[다음 기사입니다. NX은행에서 발생한 은행강도사건의 범인들이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호송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들은 은행에서 강도를 벌이고 돈을 챙긴 채 트럭을 타고 도주하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행인을 쳤으나, 해당 인물은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트럭에 붙어...]
[..시민들은 해당 행인의 행동을 두고 은행강도를 단죄한 영웅적 행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반면,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부수적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경찰은 해당 인물에 대한 조사를...]


탁. 하고 라디오의 전원이 꺼지는 투박한 조작음이 방안에 울렸다.
집에 돌아와서 혹시 오늘 있었던 일이 언론에 보도 되나 싶어 라디오를 켜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창 해당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사실 오늘 내게 일어난 일들 중 유쾌했던 일들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배달일하다 진상을 만난 것도 충분히 기분이 더러웠고, 신호는 내 앞에서 걸리는 빈도가 유난히 많았다.
짜증을 삭이며 얌전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왠걸, 왠 과속 트럭이 달려와 그대로 나를 오토바이채로 치어 버리고, 오토바이를 개작살 내놓은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그날 쌓아둔 분노가 폭발했던 기분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버려 한대씩 쥐어패주겠다는 심산으로 트럭에 붙어서 벌인 행동이 오늘 있었던 일이었다.
그보다 이제 안거지만, 그놈들 은행강도였구나. 어쩐지 어디서 본 적 있는 가면이다 싶었는데. 뉴스에 자주 나오는 은행강도단 놈들이었던 게 떠올랐다.


"..썩을."


침대에 편히 누워 있었으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짜증으로 변해 채워지는 걸 막기 힘들었다.
무엇을 걱정하는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방문? 이번에 당한 은행강도단의 보복?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경찰들은 어차피 바빠서 이번에도 흐지부지할 거 같고, 옛 삶 처럼 단련에 미치진 않았으나 강도따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다.

그보단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새 오토바이 장만하기엔 너무 빠듯한데... 어쩌냐..."

차라리 내 몸뚱어리가 박살 났다면 며칠 정도 정좌한 채로 명상하며 밥만 잘 챙겨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텐데. 애초에 덤프트럭이 부딪힌걸로 박살 날 몸뚱어리도 아니거늘.
그런데도 오토바이가 박살 난 것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몸을 고치는 재주는 있지만 기계를 고치는 재주는 나에게 없다.

내일부터 배달은 어떻게 해야 하지? 뛰어서 해야 하나? 한다면 못할 거 까진 없다. 오토바이 정도의 속도라면 충분히 뛰어서 낼 수 있으며, 하루 종일 뛰어도 문제없을 체력은 있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속도로 인도를 뛰어다니는 배달부라면 인도주행하는 오토바이랑 별 차이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오토바이보다 더 위험할지도.

"다른 일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예나 지금이나 사치 부리는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지금 사는 시지프스구는 치안이 안 좋은 마굴에 가까운 곳이라 집값도 싸다.
그렇기에 배달부 일만으로 생계에 어려움은 없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큰 지출을 감당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배달을 가까운 곳 위주로 다니고 다른 파트타임 알바라도 찾아봐? 아니면...'

그런 고민이 뇌리에 흘러들어와 고이기 시작했다. 고여가는 고민은 곧 짜증으로 변해 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작 이 정도 고민 따위로 짜증을 머릿속에 쌓아둘이유가 없다.

'뭐라도 마실까.'

냉장고를 열어 마실만한걸 찾아보았다. 생수통과 종이컵 한잔 분량 정도가 남은 듯 보이는 콜라가 보였다.
물로는 짜증이 가시지 않을 거 같았는데다, 다른 선택지인 콜라도 짜증을 씻어내기엔 양이 부족해 보였다. 한숨을 참지 못할 노릇이구만.

없는걸 만들어 내는 재주도 없는데 어쩔 수 없지. 바람도 쐴 겸 근처 마트라도 가서 뭐라도 사오기로 했다. 마침 시간도 나쁘지 않네.
이렇게 된 거 간만에 알콜이나 좀 섭취할까? 지출도 커질거 같은데 굳이 지출을 더 늘리기엔... 아니, 이런 생각은 접자.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이.

나가기 위해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기 전에 문 앞에 걸려있는 것을 집었다. 
집은 것은 방독면이었다. 그것을 머리에 쓰고 나섰다.

이곳의 공기가 방독면 없이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나쁘기 때문에 이걸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방독면 같은걸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면 어느날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이곳에선 권장되는 것이다.
물론 난 없어도 되지만, 그래도 안 쓰면 귀찮아진단 말이지.



지금 시각 9:24 PM. 진작에 해는 떨어진 지 오래.
이 동네는 지금 시간대가 되면 사람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 보면 좀 황량한 기분이 적잖게 든다. 
하지만 차라리 황량한 게 낫다. 이 시간대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게 일반적인 부류가 아닐 확률이 높으니까.

경험상 이런 시간대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라면야 대게 갱단의 심부름꾼, 갱단원, 강도, 범죄자, 혹은─

"내놔! 다당장 가진 거 다 내쿨러헓!!"

털썩. 소리를 내며 나에게 칼을 들고 달려든 남성이 경련을 일으키며 고꾸라진다.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약쟁이들이 있다. 대충 이런 부류들이 95퍼 정도의 통계를 차지한다 보면 된다. 나머지 5퍼센트만이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인 거고.

마주치면 제각각의 이유나 목적을 대며 찝적거릴 수 있으나, 적당히 복부나 머리를 건드려주면 큰 탈 없이 해결할 수 있다. 이번에도 적당히 복부를 건드려 준 후 그 장소를 벗어났다.

이렇듯, 치안이 개판인 곳이다 보니 편의시설을 찾기 힘들다. 다른 곳에서는 흔한 24시 편의점 같은 곳도 이 근처에선 보기 힘들다. 잘못하면 괜히 갱이나 마약 중독자들이 손님으로 받아야만 하니까 말이야. 이런 늦은 시간까지 여는 마트도 이 동네에선 한 군데 밖에 없고, 그 곳까지는 걸어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아까 같은 마약중독자가 칼이나 총을 들고 달려들 수도 있고, 혹은 강도가 달려들 수도 있다. 가끔은 무리지어서 나올 때도 있고.


그렇기에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간다. 단순히 마실거 하나 사러 나왔는데도 얼굴을 가린 채 끊임없이 주변에 경계를 기울이며 걸어가야 하는 모습.
필히 지금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인식 사이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평범한 삶' 과는 꽤 거리가 있는 살벌한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살벌함이 나에겐 좋았다.

하루하루 생사가 오고 가는 피 튀기는 살벌한 전장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자신이 녹슬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참아야만 하는 태평성대 또한 아니다.

진지하게 각오를 다진 채 임하면 능히 대적하며 살아갈 수 있으나, 나태해진 채 긴장을 풀었다간 언제 눈먼 총알을 맞고 사경을 헤맬지 모르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이 동네에 살고 있었다. 
예전처럼 무에 몰두하고 싶진 않았으나, 이미 쌓아놓은 무를 쇠락하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어중간한 마음가짐을 가진 채 살기 적당한 곳이다.

물론 적당히 한 두대 치면 고꾸라지는 놈들이 상대여 봤자 어린이 손목을 비트는것과 매한가지. 이런 놈들이 덤비는걸 상대하기만 해서는 쇠락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이쪽이 굳이 먼저 건드려서 좀 더 일을 키우면 된다. 그러면 좀 더 적극적으로 단련하듯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오, 때 마침 귓가에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어림잡아 3~4명 정도의 소리. 누군가를 위협하는 어조 같기도 했다.

'강도단인가? 한번 손 좀 봐주고 갈까.'

밤 중에 길을 가다 굳이 강도들이나 갱단이나 마약중독자 같이 질이 나빠보이는 놈들이 보인다면 녀석들이 내게 덤벼오는것도, 내가 덤비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총을 들고 있던 칼을 들고 있던 간에 적당히 몸을 움직여주면 단련은 몰라도 운동은 된다. 손 봐주면 한동안 주변이 좀 조용해진다는 소소한 장점도 있다.
물론 갱단 같은 조직들을 건드렸다가 얼굴이라도 팔리면 사는 집에 테러가 날라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방독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걸 잊으면 안된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트를 가기 위해 돌아야 했던 코너길과 정반대의 방향.
내 어깨까지 오는 높이의 담벼락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가로등이 불빛을 비추는 곳에 내가 들은 소리의 근원지가 있었다.

어둑어둑한 밤길 한가운데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밝아져 있는 곳. 그곳의 가운데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고 주변엔 세 남성이 손에 흉기를 든 채, 그녀를 에워싸듯 서 있는것이 보였다.
얼핏 봐도 지나가는 여성을 상대로 세명이 강도질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 범죄 현장은 여기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무언가가 특별히 이목을 끌었다. 이곳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유독 내 시선을 끄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 가운데의 저 여성이었다. 멀리서 생김새만을 보면은 앳되어 보이는 미인상의 여성. 
평범한 여성...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다.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발과 목덜미에 감겨있는 뱀. 그리고 그 뱀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고혹적인 눈매가 보였다.
여러면에서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이목을 끈 것은 그런 그녀의 그런 면모들이 아니다. 인상에 강하게 남지만, 있을 수 있는 면모들이니까.

그녀가 명확하게 무언가 다르다 느낀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이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이내 곧바로 해답을 찾았다.
분위기다.
그녀는 능글거리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었다. 마치 흉기를 든 채 자신을 둘러싼 강도들이 지금부터 그녀에게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시켜줄 것을 기대하는 것만 같이.

(씨익)

"!"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그 여성은 나에게 눈웃음을 지어주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웃음에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누가봐도 여성이 위험한 상황. 하지만 그런 그녀가 위험해 보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이 위험하다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뱀이다.
그녀는 뱀과 같았다. 그녀의 모습으로부터 백사(白蛇)의 모습을 느꼈다. 
거대한 백사가 가로등 밑에서 똬리를 뜬 채 나를 지켜보는 듯 했다. 

"아가씨~ 사람이 말을 하는데 대답을 해줘야 예의 아니야?"
"귓구녕이 막힌거야 눈이 장식인거야? 이게 장난감으로 보여?"

이 자리에서 그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저 세놈 뿐인 듯 했다. 
갱단원인지, 강도들인지, 구별도 안가지만 구별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 셋은 분위기 파악을 못한 채 들고 있는 칼이나 총 따위를 여성에게 겨눴다.

그걸 보는 나에겐 망설임이 있었다.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강도 셋 정도 손봐주는데 문제가 될 것도 없지만, 저 백사 같은 느낌의 여자를 앞에 두고 내가 손을 봐줘도 괜찮은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나설 의향은 있으나, 내가 나서는게 그녀의 귀찮음을 덜어주는 것일까, 그녀의 먹잇감을 가로채는 것일까. 그것을 고민해야할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민의 해답은 그녀 쪽에서 제시해주었다.

"이제야 왔네, 기다리고 있었다구."

별안간 그녀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눈빛은 여전히 능글맞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녀를 에워싸던 강도들도 그제서야 내가 이곳에 있음을 눈치 챘다.

"아이씨, 어떤 놈이 방해하냐?"
"저건 또 뭐야, 왠 대가리가 이상한 놈이야?"
"잠깐만... 저거저거 그 놈 아냐! 저번에 내 다리 분질러 놓은 놈!"

세 명중 한놈이 나를 알아보는 듯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분질러 놓은 놈이었나? 사실 여기 살면서 한두놈 다리 분질러 놓은것도 아니다 보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쟤여? 그 밤마다 방독면 쓰고 다 때려부수고 다닌다는 놈이?"
"방독면 말곤 듣던거보다 못해 보이는데."
"아니 X발 맞다니까, 야야 오늘은 가자 그냥, 어?"

방독면 쓴 채로 손봐준 경력이 좀 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가 쓰고 있는 방독면은 알아보는 놈이 는 모양이다. 저기 저 녀석은 내가 직접 손봐준 놈인 듯 하니 알아보나 보네.
이대로 그냥 두면 알아서 꺼질 분위기다. 하지만 난 애초에 쟤넬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고, 저 여성도 날 아는 듯이 말을 걸어줬다는 것은
내가 처리해도 된다는 얘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하고 나서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스으으읍
푸흐으으

깊게 들이마쉬어지는 숨이 방독면의 필터를 지나치며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방독면을 쓴채 숨을 쉬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젠 익숙하다. 깊게, 깊게 숨을 쉬었다.
숨을 들이쉬는 만큼 몸에 힘이 차오르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공기가 몸 안에 들이 찰 수 있을만큼 찼다고 느껴졌을 때─

뻐어억!!
"꺼헉!"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짧고 굵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땅바닥에 사람 하나가 풀썩, 하고 쓰러졌다.
앞쪽으로 쓰러진 녀석의 복부에는 내 무릎으로 강하게 찍힌 흔적이 옷 위에도 남아있는게 보였다.

"야, 잠깐만...!"
뻐억!

다른 한놈이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빠르게 미끄러지듯이 거리를 좁히곤 명치에 팔꿈치를 강하게 꽂아 넣었다.
그걸 맞은 녀석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입에서 토사물을 뱉고 그 위로 쓰러졌다. 아 더러워. 괜히 더러운거 안튀게 빠르게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둘을 눕히고 나니 한놈이 남았다. 공교롭게도 저번에 내가 한번 손봐준걸로 추정되는 놈이 말이다.
이미 저항하는건 포기했는지, 내가 둘을 눕히는 동안 바로 저 멀리 내빼기 시작한게 보였다. 그걸 보니 한숨 비슷한 조소가 나왔다.
바로 도망치는 녀석을 따라잡아, 달리는 녀석의 뒷발꿈치의 로우킥을 먹여 버렸다.

"끄하학!"

발 끝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감각이 전해졌다. 발 뼈가 좀 부서졌는지 녀석이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땅바닥을 구르며 발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아악! 아흐악...!!"

"왜 도망부터 치는거야."

발을 부여잡고 구르는 녀석의 복부를 밟아 고정시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여자애 둘러싸고 있을때의 자신감은 어디가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가 듣고 싶은게 아니야."

복부를 밟고 있던 발을 잠깐 떼고 그대로 다시 내려찍어 밟았다. 복부를 밟아 강하게 숨을 토해내며 연신 기침을 하는게 보였다.

"기껏 칼이다 총이다 들고 기세 좋게 휘두를 때는 언제고 도망부터 치냐고."

"커헙..! 무, 무슨 뜻..."

"덤벼봐."

복부를 밟고 있던 발에서 발을 떼고 몇발짝 물러나며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덤벼보라고.

"허리에 차고 있는건 비비탄 총이야? 쏠 생각을 안해 왜."

"무, 무슨..."

"쏘라고, 장식이야 그건?"

나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땅바닥에 누워있는 강도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내 시선을 받던 강도는 한동안 가쁜 숨을 고르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어 총을 뽑아 겨눴다.

탕! 탕! 탕─!

조용해진 밤의 거리에 총성이 세발 울려퍼졌다.
이 거리에서 총성은 그리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이 총성을 들은 사람이 있다 해도, 대부분은 그저 오늘도 운 없는 누군가가 총맞고 쓰러졌겠거니 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이 세발의 총성은 오늘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했다. 맞추기는 했지만 말이다.

"흐음."

"무, 무슨..."

스읍, 하아.
방독면 밑에서 숨을 고르며 충격이 느껴진 부분들을 더듬었다. 딱히 아픈 느낌은 들지 않지만... 아 여기 구멍 났다.
역시 이런것 까진 아직 어쩔 수 없나. 단련을 통해 몸이 총에 뚫리는건 막을 수 있어도 옷이 뚫리는거까지 막긴 역시 힘들구나.

무언가 식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뛰듯이 거리를 좁혀 아직 일어나지 못한 녀석의 턱주가리를 걷어 차버렸다.

빠각!
"크럷!"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걷어차여져 날아간 강도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지야 않았겠지만 한동안 음식 씹기엔 힘들겠지.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니 괜한 짓을 한 기분만 들었다. 
최근엔 이렇게 방독면을 알아보고 도망부터 치는 놈들이 늘어난 기분이 든다. 이런 놈들을 상대해봐야 아무런 운동도 안되잖아.
지금 와선 마지막에 총은 괜히 맞아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굉장하네, 안 아파?"

그렇게 머쓱해하던 와중에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얘도 있었지.
여성은 기대하던 흥미로운것을 잘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뭘까 이 사람은. 약간은 경계심이 들었다.

"몸이 튼튼한 축이라서."

"헤, 혹시 초인 체질? 방탄복 입은 거 치고는 어쩐지 옷차림이 얇은거 같더라."

그러면서 그녀는 흥미로운 눈치로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길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경계심이 들기도 했다.
진짜 뭐하는 사람이지. 방금 눕힌 강도들에 대한 언급은 1도 없이 나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는게...

"그보다, 이 시간대에 여성 혼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여기 시지프스구인거 모르진 않을텐데."

굳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이런 시간대에 시지프스구의 거리를 돌아다닌다는것은 보통 두가지의 케이스를 의미한다.
그 사람이 아르키디아라는 곳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 사람이 어지간한 위협보다 위험한 사람이거나.

나는 이 둘 중 후자에 속하는 케이스다. 그리고 내 직감 상, 내 눈앞의 이 여성도 동류일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럼에도 굳이 물어보았다. 기왕 본인 입으로 들어보고 싶었다.

"말했잖아.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그쪽을 말이야, 하고 여성은 나를 가리켰다. 나를?

"오늘 누구 만나기로 약속 만든 기억은 없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소문 듣고 찾아왔으니까, 당연하겠네?"

소문, 내가 이 근방에서 얘들 때려잡고 다닌지 꽤 되면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알고 있었다만.
그 소문을 듣고 날 피하거나 되려 달려드는 녀석은 보긴 했지만, 이렇게 기다렸다는 케이스는 처음이다.
아니, 혹시 이거 이대로 대화하다 '그럼 죽어줘야겠어!' 하고 달려드는 패턴인가?
그런 생각이 미치자 숨을 천천히, 끊임없이 들이쉬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 공기를 구석구석 빠짐없이 채운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이 근방에서 이 조직 소속, 저 조직 소속 상관 않고 치안 어지럽히는 놈이면 상관없이 두들겨 패준다던걸."

"..."

딱히 대답을 돌려주진 않았다. 대답을 돌려주기 보단 숨을 쉬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혹여나 우려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크로노스 갱단이나 마피아 같이 큰 조직도 개의치 않고 두들겨 팬다길래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그리 말하며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며 나를 훑어보는게 느껴졌다.
아까 느꼈던 것처럼, 사람 크기만한 백사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먹이를 보는 느낌이나 적의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는걸 보아하니 단순히 정의감, 같은건 아닌 모양인걸?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호기심.
이 여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눈빛이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 흥미로워 보이는 것을 찾아 이곳에 온 것만 같은 눈빛.

...뱀의 눈빛에서 그런 느낌을 느낀다는것은 참으로도 기묘한 것이었다.
그런 기묘함에 왜인지 모르게 대답해 줄 생각이 생겨나고 말았다.

"길 가다 시비를 턴거라거나, 집 앞에서 시끄럽게 총 쏴댄건 좀 짜증이 나던데."

"에~ 그런 이유로? 벌인 일에 후환 같은건 안 무서워?"

"고작 그런 이유면 안될 이유라도?"

"그럴 이유는 없지~ 그냥 시비 털리거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이 곳에서 총 맞을거 각오하고 다 때려패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잖아~"

하긴 뭐 그러니까 소문이 나겠지만~ 이라고 말을 이으며 그녀는 웃었다.
이 사람은 대체 뭘까. 기자라도 되는 걸까. 아니, 아닐거다.
문득, 왜 굳이 이렇게 물어보는건지 짐작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말을 해줄 기분이 들었다.

"재미다."

"응?"

"총 맞을걸 알고도 굳이 이런 위험한 놈들을 계속 건드리는 이유가 있다면, 재미야. 그 뿐이지."

조금은 솔직하게 느끼는 바를 털어놓았다. 그렇다, 재미다. 이 곳에 살면서 강도들이나 갱, 마약중독자들을 때려패고 다니는것에 짜증은 있을지언정 원한이라 할만한 것은 없다.
애초에 이곳에서 강도나 갱들에게 적극적으로 시비를 거는 쪽은 상대쪽이 아니라 내 쪽인 경우가 많다. 지금 와서는 오히려 내 방독면만 보고 도망치는 녀석들이 더 많을 지경이고.
마약중독자야 대부분 분간을 못하니까 덤벼오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결국 동기를 따지면 평화에 찌드는게 싫으니까, 실력이 쇠락하는걸 피하고 싶어서, 하지만 동시에 생사경을 넘나드는 사투까진 벌이긴 싫어서.
최종적으로 선택한게 굳이 이런 치안이 개판난 곳에서 적당한 놈들을 쥐어패며 지낸다. 그곳엔 정의감도 복수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심심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미라고 했다.

그런 내 대답을 들은 여성이 말해왔다.

"이런게 재밌는거야?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여러가지지."

슬쩍, 총에 맞은 곳을 매만졌다. 그곳에 상처는 없었으나 총탄이 찢어놓고 간 옷의 자국은 남아있었다.

"총이나 칼든 놈들 상대로 놀아주며 운동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불현듯, 땅바닥에 아직 쓰러져 있는 강도 놈을 발로 툭 찼다.

"이런 사회에 도움 안되는 놈들 후려패서 제정신 만드는데에도 나름의 성취감은 있거든."

"걔네가 얻어맞는다고 갱생이 될거 같아?"

"갱생 안되면 스트레스 해소용 되는거지 뭐."

내 손해야? 

그건 그래, 하핫.

내 말이 재밌다는 듯이, 내 말에 긍정하는 듯이 그녀는 대화를 받아주었다.
이제는 좀 알거 같다. 이 여자가 무얼 위해 나를 찾아왔나 감이 오기 시작했다.
찾고 있었던 건가, 동류를. 

옛 삶에서 만난 무인들 중에서도 이런 부류가 있곤 했지.

"재밌는 사람이네. 나랑 동류인가보다."

"이런 취미 가진 사람 찾는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닐텐데, 혹시 내가 그쪽의 취미거리를 빼았은건가?"

"아냐아냐 됐어. 어차피 얘네 손봐주러 온것도 아니니까."
말했잖아? 널 기다렸다고.

그녀는 그리 말하며 별안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너 말야, 나랑 일 하나 같이 해보지 않을래?"

그런 제안을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와 간만에 만나, 술자리에서 할 일이 마땅치 않다고 했을 때 갑작스레 걸어온 제안과 같이.
나도 그녀도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허나 그녀도 나도 알게 모르게 서로간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렇다. 동질감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기묘함의 정체.
가로등 불빛 밑에서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사를 보고 있을 때 그 백사는 과연 내 쪽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만난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로부터 갑작스럽게 받은 제안.
그 제안으로부터 내가 느낀 것은 경계가 아닌 호기심이었다.



=====작가 후기=====



주인공 빌드




주인공은 전생에 무협 세계관에서 살다 죽었고, 이후 자경단 세계관에서 새 삶을 시작함.

정확한 경위나 이전 삶에 대해선 추후에 다룰 기회가 있을 듯.


빌드는 저렇게 짜긴 했으나 보유한 도구나 동료 같은 경우엔 픽한 것 외에도 재밌어 보이면 유동적으로 바뀔 지도 모름.

애초에 NSFW 빼서 저 빌드는 포인트가 안맞는다. 


개인적으로 자경단을 CYOA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연재글이 안보여서 직접 써보았다. 좋게 봐주면 감사함.